2026. 1. 4. 14:33ㆍ日

31일에 혼자네. 그날 뭐 할 거야? 20대 마지막인데.
11월 말이었나, 10월 중순이었나, 언제였나. 질문을 받은 뒤로 25년 12월 31일은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20대의 마지막이니 무언가 거창한 걸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구체적인 계획 없이 다음 생각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흘러서, 그냥 혼자 사케 깔짝대다가 잤다. 특별한 일을 벌이진 않았다. 일상이 바빴던 까닭. 25년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였는데, 시기 상의 이유로 조금 특이하게 바빴다. 성탄절과 신정 사이의 헛헛한 날들에는 많이들 쉬는 편이니까. 시차와 연차 때문에 아침과 자정에 제일 시끄러웠다. 졸지에 평소보다 1시간 일찍 깬 날에는 실내 자전거로 몸을 깨우고 출근했다. 혼자 있을 시간에 바쁘고, 다 같이 있을 시간에 늘어지고. 홀로 쉬질 못했다는 말이고 엿 같았다는 뜻.

31일과 1일에는 수많은 이들의 25년도 소회를 보았고 불특정다수를 향한 짤막한 인사와 상투적인 인사와 특정인을 향한 길지 않은 인사를 받았다. 소회는 주로 읽지 않았고, 짤막한 인사도 딱히. 상투적인 건 답장만 했고 길지 않은 인사는 의심스럽거나 귀여웠다. 얘가? 이 사람이 나를 기억한다고? 문득 몇 살엔가 벌였던 편지 프로젝트가 떠올라서, 또 손편지를 써볼까 하다가 말았다. 귀찮다. 하지만 원한다면 '편지' 이모지를 당장에 갠톡으로 보내쇼.
서른이라니. '서른'이라 하면 으레 지녀야 하는 성숙미.. 잘 발효된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없다. 우울하기도 적적하기도 기대되기도 새로운 것 같기도 한 무수한 감정이 올라오긴 하는데, 억지로 깊게 생각하지는 않으련다. 나이는 매년 먹어왔잖아 사실.. 앞자리가 바뀌는 건 좀 싫기는 하지만, 따져보면 30대 중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 되었다..! 20대 요약도 해볼랬는데 으레 각자의 삶이 다 그렇듯 한 꼭지로 비약하기엔 무리무리.. 일기나 제대로 쓸 걸 후회 중. 그냥 이런 30대를 맞이하려고 그런 20대를 보냈구나 하고 생각한다. 고생했고 앞으론 똑똑하게 고생하도록 ~
온갖 토막은 많은데, 토막들이 쌓이고 쌓여서 녹아 내 안에 있다는 건 이상하다. 갤러리를 보아도, 썼던 글들을 보아도, 옷장 안을 보아도 그렇다. 내가 갔던 곳도, 먹은 것도, 즐긴 것도, 입었던 것도, 쓴 것도 다 맞지만 유기적으로 감각되진 않는다. 이 일련의 종점에 지금의 내가 있다니.

25년에는 읽기만 했다. 배우고 쓰는 것 없이 집어넣기만 했다. 그렇다고 많이 읽은 건 아니고요.. 얼렁뚱땅 20대의 마지막을 보낸 셈. 하려던 건 참 많았는데 말이여.. 항상 지망생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야심과 백수의 수준인 게으름이다. 어디선가 화련 같은 길잡이가 나타나서 "너 지금 이러면 안 돼"하고 강제로 뭘 시켜줬으면 좋겠어요 이 불안과 혼돈의 시대에서 어떻게 나만 믿고 내 의지대로만 살아가라는 것인지? 그건 너무 박하니까 말이 안 되고.. 알아서 내 팔자 기반 생애주기 및 주변인들과의 궁합 파악해서 어떻게 좀 해주길 바람 무작정 무책임한 응원만 날리는 컵라면 말고 ..

올해 1월 1일에는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갑자기 펼쳐 든 <어린 왕자>를 다 읽었다. 너무 어렸을 때 읽은 책이라 인터넷에서 여우의 말들을 봤을 때 기억도 안 났다. 크리스마스랑 왜인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읽기 시작. 크리스마스 이후에 쉬질 못했으니, 걸쳐 읽은 시간 생각하면 빠르게 읽은 것은 맞다. 명작은 명작.
2일은 출근과 초과근무, 같이 춤추던 친구들과의 돼지빠레가 있었고 3일인 오늘은 택배를 깠다. 좁아터진 방구석은 이미 못 읽고 밀린 책으로 넘쳐나지만.. 비록 책장이 꽉 차서 북스탠드를 또 샀지만..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안 사고는 못 배길 제목. 두 끼를 냉동 돈까스와 사과 드레싱 올린 양배추로 때우며 다 읽었다. 내 잔치는 끝났나.
큰집의 막내딸인 나는 어릴 적 설, 추석 당일과 떡 하는 날은 정말 좋아했는데, 명절 다음날은 아무리 쉬는 날이래도 싫었다. 크리스마스도 썩 반갑지 않았다. 하루를 위해 한 달 전부터 유난 떨어서 뭐 할 건데. 지나고 나면 다 허전하고 심심하고 서운했다. 큰집이라 작은 아빠, 큰고모, 작은 고모, 할머니가 우리집으로 왔었는데, 북적북적 바글바글 보글보글 맛있고 시끄럽고 피곤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다 제를 마치면 다 같이 부치고 누르며 만든 명절 음식을 비닐봉지에 각자 먹을 만치 싸곤 사라져 버린다. 기다리는 것도 가만히 있지 못하겠고, 보내고 나서도 몸이 배배 꼬였다. 겨우 이 이틀이 지났다고 한 달 내내 들떴던 게 식어버린다니. 미적지근해지는 것도 아니다. 한겨울 최고 온도로 돌린 난방에 후끈후끈해진 공기를, 마주 본 창문 두 짝을 활짝 열어 환기시켜 버리는 수준이라고. 자그마치 한 달 치의 설렘이었는데.
크리스마스도 보통 새해가 되어서야 온갖 설치물과 장식이 철거된다. 열기가 있었던 흔적을 바로 치우지 않는 이유를 통 모르겠다. 아마 귀찮아서겠지. 혼자 살면서 크리스마스에 꺼낼만한 오브제는 사지 않았는데, 짝꿍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엄청나게 행복한 연례행사라서 루돌프 오너먼트만 하나 구비해 뒀다. 25일이 다가오면 슬 꺼내 창문에 붙여놓는다. 지난 크리스마스의 루돌프도 잠깐 창문에 붙어 세상 구경했다. 지금은 당연히 트롤리 안에 들어가 있고. 귀찮다고 꺼낸 채 오래 두면서 식어가는 열기를 두고 보고 싶지 않다.
가라앉는 동안의 아쉬움이 너무 싫어서, 이 아쉬움을 작게 만들려면 설렘을 줄여야 했고, 그러면 기다리지 않는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게 몸서리 칠 만큼 싫어서 기대를 죽인 격. 덕분에 적당히 들뜬 채 잔치를 즐기는 법을 익혔다. 치우는 법도 배웠다. 잔치가 끝난 뒤의 자리에는 치우는 사람들만의 부산스러움이 남아있는데 그 대화가 퍽 재밌다. 누가 이걸 잘 먹더라, 이번엔 고기 간이 좀 짰던 것 같다, 이 집 케이크보다는 저번 집이 낫다, 와인 마음에 드셨겠지 등등. 도란도란 떠들며 웃기도 한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도맡는 것 같아 상당히 어른스럽게 느껴지는 건 덤. 식히고, 치우고, 쉬면서 다음 자리를 그려본다. 이젠 내 30대를 그릴 차례.
내 첫 잔치는 우선 끝났다고 해야겠다. 그만큼의 열기가 30대에도 있을지는 모르겠어서. 1월 1일 00시 만을 기다리다 술집에 들어가며 흥분했던 10년 전과 며칠 전 1월 1일 00시에 '우리가 서른에게로 간다'며 식겁하던 건 확실히 다르겠지.. 정신머리가 아무리 똑같은 것 같아도 인생 업데이트는 매해 진행된다..


지금 쓰인 시가 아니란 점을 고려하면 증 말 루 도시적이세요


25년 연말에는 의외의 것들을 구매했는데, 작은 파우치나 모양새를 따진 가방이나 약통 케이스.. 뭐 자질구레한 걸 샀음
보부상의 천성을 견딜 가방이면 아무거나 사서 썼는데, 이젠 어깨가 견디질 않아.. 바리바리 바리스타 탈피를 위해 가방과 왓츠인마이백을 바꿨음..
ㄹㅇ업데이트 중(30%)..

25년 포스팅 건너뛰고 26년부터 올린 거 보면 나도 참 새해에 의미를 많이 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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