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불순물을 걸러내야겠다고, 오로지 내 속내만을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깨달은 지 어언 한 달이 다 지난 것 같다. 언제부터 이렇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고 남의 평가에 매달렸으며 무용한 불안으로 많은 시간을 헛날린 걸까.
사실 그런 지는 오래 되었다. 스물다섯과 스물여섯을 거치며 겨우, 정말 겨우 인정해냈다. 어떻게든 겉으로는 만사 다 결과적으로는 잘 해내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애를 썼다. 백조처럼 산 듯하다. 수면 위로는 태연하고 미동도 적지만 수면 아래로는 정말 분주한 그런 인생. 실패가 무서워서 도전을 숨겼고 실패가 싫어서 도전을 안 했다. 실패 없는 삶이 실패하지 않는 길만 선택해온 삶의 유의어일 수도 있음을, 썩 좋은 선택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이제서야 알았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알고리즘의 추천을 따라 라디오처럼 들었던 유튜브에서 그랬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끼리 만나는 편이고, 불행과 행운은 동시에 오는 경우가 많다고. 당시엔 불행이었던 것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면 그렇게 큰 불행이 아니었던 적도 있고, 결국엔 행운인 경우도 있고, 불행을 견딜 맷집이 있으면 그만큼 큰 행운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알고리즘 주제에 별걸 다 추천하네 아니꼬웠지만 알고리즘은 유저의 니즈에 맞는 컨텐츠만을 추천한다.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우선은 그게 기본 로직이니.
그저 좋아하는 일을 같이 하고 재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다가, 최근 들어 그 삶은 잠시 접어두고 '능력'과 관련된 활동이 일상의 주를 이루는 삶을 살았는데 아무래도 이 영향이 엄청난 것 같다. 주변엔 부쩍 결이 다른 것은 물론 무조건적인 응원을 하기 보다는 서로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지 않고 '무엇을 가진'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자격증, 어학점수, 학벌 등등 이 모든 것을 통틀어 보편적으로 '스펙'이라고 하기에 나 역시도 별생각 없이 그랬었는데 스펙은 제품 사양을 뜻하지 않던가. 정말 무슨 제품 스펙을 보듯이 사람을 보더라. 사람이 사람을 보는데 사양을 따진다는 게. 이게 맞나.
가장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일상을 지내다보니 나조차도 그러고 있었다는 점이다. 요즘 스스로가 짜증 나기 시작하고 짜증 나니 답답하고 답답하니 짜증이 나고 종내 인색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뭐 하나 양보하지 못하고 쉽게 웃지 못하고. 못난 면만 보고 못난 면만 보이는 수렁에 빠진 듯한 찝찝함. 만사에 박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 채 낮을 보내고 그런 낮을 후회하는 밤을 보냈다.
그런 낮과 밤을 보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사가 잘못 박히기 전의 삶처럼 살면 될 것 같은데 그건 어떻게 하면 될까, 나사가 뭐 때문에 잘못 박힌 걸까. 어디서든 답을 얻고 싶어 안양으로 출퇴근하는 동안에는 뉴스레터를 다 읽으면 책을 읽어주는 유튜브를 들었고 그런 영상 한두 개를 보고 나면 책을 읽었다. 양재로 출퇴근하는 동안에는 읽을거리를 다 읽고 나면 노래를 들었고 그러다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두 출퇴근길의 83%는 생각을 했다. 하면 되겠지, 하면 된다, 하는 생각이 아니라 하면 될까, 안 되면 어쩌지, 심하게는 굳이 해야 할까-까지. 머리 크고 나서 내 미래에 대해 이렇게 부정적인 고민을 해본 적이 있을까. 나 잘못하고 있는 거면 어쩌지, 이러다가도,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거지.
그런 낮과 밤과 출퇴근길을 얼마나 보냈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교육을 들으러 오가던 길도 포함해야 할 수도 있다. 확실한 점은 이런 상상과 생각에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는 거다. 사람의 상상력은 엄청나다 그래서 나는 이 초조함과 불안감이 앞으로도 지속될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뇌는 상상에 그다지 능력이 없는지 아니면 체력이 좋지가 못한지, 불안한 상상에 지친 것만 같다. 아니면 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초조함과 불안감을 진정시키려는 내 노력이 통한 걸까.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편의 영화를 보고 여행을 다녀오니 갑자기 평온해졌다.
평소와 같이 옥수역에서 환승을 하던 길이었다. 출근길이었나, 퇴근길이었나. 계단을 오르고 있었는지 내려가고 있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3호선 플랫폼 계단이었던 것만 선명하다. 평소 즐겨 듣는 아이돌 노래를 듣고 있었다. 출근길에 자주 듣는 노래이니 출근길이었으려나. '옥수'라는 글자를 보는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자꾸 안 되면 어쩌나 진짜 이러다가 지금 같은 일상 못 보내면 어쩌지 나중 되어서도 일자리 없으면 어떡하나 생각하는 거지. 왜지. 그럴 리가 없는데. 도대체 왜? 내가 더 걱정해야 하는 건 이렇게 살다가 좁아질 내 그릇 아닌가. 추해지는 꼴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왜 상황을 벗어날 결심을 못하지. 누가 대뜸 내 팔을 붙잡고 말을 걸 듯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침이었는지 저녁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아침이었던 것 같긴 한데.
대략 한 달 전부터 자꾸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뭐가 됐든 안주하지 말고 살자. 돈 벌면서 글도 쓰고 공부도 하자. 뭘 자꾸 인생 거의 끝난 마당에 엄청난 선택이 남은 사람 마냥 구는 건지 나도 참. 못 해내도 좋으니, 다 괜찮으니까, 이 정도면 됐지 지금 당장 등 따스우니 됐지, 하고 살지 말자. 오래 걸리든 잠깐 삼천포로 새든 뭐 어떤가. 여행을 떠나놓고 다른 재미난 목적지 여럿 두고 갖고 있는 신발이 닳고 몸이 상할 수도 있다며 동네 하나에 얹혀사는 그런 삶을 살지 말자. 막히면 돌아가면 된다.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뭔지 어떻게 하고 어떻게 배울지나 생각하자. 하늘이 무너져도 사람 살 길은 다 있댔다. 땅이 무너지면 부유하는 삶을 즐길 줄 아는 태도로 살자.

불평조차 하지 않는 현실감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줄 거라 믿었다. 기어코 뒤통수를 치고 마는 게 현실이라는 것도 모르고.
s.21, <한여름의 동상>
"제가 방송국 사장이면 뽑을 것 같네요. 목소리가 너무 좋으세요."
"그 말 때문에 지옥에서 살고 있죠."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재능이 있다는 말만큼 스스로를 옭아매는 건 없으니까.
s.76, <망생의 밤>
"솜씨가 나쁘진 않네."
"귤 따는 게 똑같죠 뭐."
"똑같다고 생각하는 게 능력이에요. 세상엔 엉망진창인 사람이 훨씬 많아요."
s.101, <귤 따는 춤>
다 덮진 않을 거예요. 일말의 희망 정도는 남겨 둬야 하니까요. 그게 또 날 살게 하겠죠. 지금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평생 이루지 못할 거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s.166, <완벽한 절망>
"너 진짜 포기하지 마. 한번 꿈꿨으면 계속 꿔야지."
s.201, <자니?>
나는 운이 없는 게 아니라 실력이 없는 것 아닐까. 조만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 아닐까. 새로울 것 없는 불안이었지만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내 인생 내가 꽜지 뭐."
"그건 결과론이고. 어떤 희망을 품고 절망의 길에 들어섰냐는 거지."
s.209, <부업>
내가 흔들릴 때마다 붙잡아 주곤 했다. 이것 역시 제대로 된 길을 찾았다는 계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도망칠 수도 없게 하는 족쇄 같았다.
s.220, <일단 한번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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