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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 가서야 알게 된 유독 다가오는 연말에 조바심과 우울함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은 요즘이다. 머리가 크고 보낸 해가 이젠 적지 않건만 유난히 올해에는 12월을 마냥 웃으며 맞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다소 소란스럽고 불안하게 구는 세상 탓일까. 빠르게 지나가 버린 올해를 돌이켜보다 조금 늦은 연초에 다녀온 여행이 떠올랐다. 연초를 기념하러 다녀온 것은 아녔기에 조금은 게으른 마음으로 다녀온 여행이었다. 여행을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은데, 어언 반년도 훌쩍 넘어서야 활자로 남긴다. 그래도 더 많은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적어두는 것이 좋으니. 정신을 차려보니 짝꿍과 나는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었고, 제주에서 온 내 친구도 비행기에서 곧 내릴 것이었다. 그리고 공항 바깥에는 짝꿍과 관심사가 꽤 닮아있는..
12월 어느 사찰에서의 절에 갔다 차를 마시는 사이 쌓인 눈에 일주문을 채 지나지 못하고 견인차를 부르는 내용의 소설을 읽자, 지난 연말 다녀왔던 강원도 어드메의 절간이 생각났다. 버스를 탄 채 일주문을 지나는 건 내 생에 처음이었다. 버스에는 나와 내 짝꿍, 패딩을 입은 남자와 동네에 사시는 듯한 할머님, 그리고 수능을 막 친 듯한 여자 두 명이 타 있었다. 갑자기 시작되는 경사로 입구에는 정류장이 하나 있었고, 정류장 벤치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남자 한 명이 앉아있었다. 정류장 앞에 거칠게 멈춘 버스는 그를 태우자마자 출발했고, 그렇게 일주문을 지났다. 그런데 일주문을 지나기 무섭게 그 남자가 좌석에서 일어나더니 할머님에게 돈을 받는 것이 아닌가. 돈을 받은 그는 종잇조각을 건넸고, 그렇게 패딩을 입은 남자와 학생을 ..
커피가 된 계란 아니 거긴 계란 한 판에 6000원이라니까. 진짜야. ... 골목 좀만 더 들어가면 내가 살던 반지하 앞에 계란집이 하나 있거든. 거기가 진짜 싼데. ... 근데 거기까지 가는 것도 일이니까 그냥 사자. 그것도 일이다, 일. 내가 몇 년도에 어느 건물 반지하에 살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 치솟아 오른 계란값에 대해 열변을 토하다 이내 그만두었다. 나도 도대체 언제 적에 본 육천 원을 주장하고 있는가. 반질거리는 4등급 계란 30구에 9,980원. 냉장고에 계란 한 판은 반드시 있어야 안심이 되는 성격 탓에 울며 겨자먹기로 계란판을 조심스레 장바구니에 넣었다. 주말 낮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계란이 얼마라며 잡음 잔뜩 낀 스피커로 광고하는 계란 트럭도 있는데. 그날은 하필이면 수요일이었고, 계란 트럭은..